파라오의 미라로 보관된 모습


미라의 기원

고대 이집트에선, 영혼불멸사상에 따라 시신에는 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어 이를 보존하는 것이 고인의 내세에 중요하다고 여겼습니다.우리 나라에서 전통적으로 행해지는 죽은 사람을 땅에 묻고 산소에 매년 제사를 하러 가는 풍습과는 조금 다른 특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해당 시대에서 서로 믿고 있는 종교와 문화적 차이 때문이라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선 사람이 죽으면 살아 생전에 "업"에 따라 사후세계가 결정이 되는 반면, 이집트에선 높은 관리직의 사람들은 "초월적인"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언제가의 부활을 대비하여 시신을 훼손하지 않고 최대한 오랫동안 보관을 해주는 풍습 때문에 그렇습니다.

특히, 아스텍문명, 잉카 제국 등에서도 높은 관리직을 가진 사람들은 죽은 이후에 미라화를 시키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시대적으로 BC 2600년 경부터 그리스도교 시대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또한, 그 밖의 고대 민족이나 근대 미개사회 등에서도 미라화 의식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미라를 만드는 과정과 풍습

미라를 만드는 과정은 시기와 지역에 따라 매우 다양합니다. 주로 장기 처리, 송진 등의 약물 처리, 붕대 감기 등이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한편, 파푸아 뉴기니나 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서는 산 사람이 서서히 미라화 되며 죽어가는 방법도 존재하는데, 이는 보통의 미라로 시신을 보관하는 방법들에 비해 고통스러운 부분이 많아 관례적으로 가장 빨리 없어진 방법입니다.

그와 더불어 멕시코나 중남미 지방은 고온 및 건조한 온도와 그 밖의 조건으로 천연적인 미라를 만들었습니다. 동아시아에서도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제작된 미라가 출토되었으며, 한국의 파평 윤씨 가문 묘지 이장작업 중 발견된 여성 미라는 공기가 통하지 않는 묘지 구조로 인해 자연적으로 형성된 미라입니다.


토착신앙이 미라를 만드는 요인

고대의 미라는 뛰어난 영술·주력·위력·무력 등을 가졌던 자의 시체를 보존하면 그의 힘이 사후에도 머물러 있게 되어 자기들을 보호한다는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기후의 건조도나 더위가 수분 제거를 위해 필요한 조건이기 때문에 미라는 북방문화 계통에는 드물고 주로 남방문화 계통에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집트의 미라 제작은 일찍부터 발달하여 3,000년 이상의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만들어진 것은 제2왕조 시대의 미라입니다. 그 후 고왕조 시대에 들어와서는 제작기술이 더욱 발달하여 내장을 처리하는 방법이 사용되었습니다.

중왕조 시대부터는 고인의 얼굴 모습을 전하기 위하여 얼굴 모양을 본뜬 마스크를 만들어 두부에 부착시켰습니다. 그 밖에도 이집트에서는 성수숭배사상이 성하여, 개·고양이·말·뱀·매·학 등 그들이 신성시하는 조수나 물고기 등을 미라로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미라를 만드는 과정 미라 제작

  1. 시신 이송 : 나일강 서안에서 시신을 처리했습니다. 이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해가 지는 방향인 서쪽을 죽음과 연관시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2. 시신 정결 : 시신의 신체를 정결 했는데, 이유는 죽은 자의 영혼의 부활과 영생을 의미했습니다.

  3. 방부 처리 : 뇌를 제거하고, 심장을 제외한 간, 허파, 위, 장을 분리하여 각기 방부 처리되고 건조되었습니다.

  4. 장기 보관: 분리된 장기는 각각 작은 관에 담아 용기에 보관되었습니다. 이후 사체에 나트론으로 알려진 자연산 방부염을 사용하여 방부 처리가 이루어졌습니다.

  5. 붕대 감기: 완전히 건조된 시신은 나일 강물로 씻은 뒤 각종 향신료를 바르고 아마포 붕대를 감아서 작업을 마쳤습니다.

  6. 마무리: 붕대에는 죽은 자의 이름을 쓰고, 얼굴 부분에 마스크를 씌우기도 하며, 전신에 송진을 입힌 붕대를 다시 한번 감아서 완성되었습니다. 이후 완성된 미라는 다양한 모양의 관에 안치되었습니다.

  7. 개구의식: 모든 부장품이 무덤에 도착하면 사제는 개구의식을 거행했습니다. 이 의식으로 죽은 자의 기능이 되살아나서 죽은 자가 다시 말하고 다시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언제부터 미라를 그만 만들었는가

그리스도교가 전래되면서 이집트의 고유종교가 쇠퇴하고, 3세기 이후에는 이러한 풍습이 점차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타림 분지의 고대국가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중국에서는 육조시대 이래 많은 승려가 미라화되었습니다.

이런 기록은 "고승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이러한 미라를 진신(眞身) 또는 육신(肉身)이라고 불렀는데, 초기의 미라는 거의 인공적인 가공을 가하지 않았으나, 수당시대에 들어와서는 시체에 칠을 발라 마포로 감싸 미라를 만들었습니다. 중국의 미라는 미륵신앙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미륵신앙이 일본에 전해지면서 일본에도 미라 제작 풍습이 전해졌습니다.